제82-나호 / 배연신굿 및 대동굿

 

1985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받은 김금화(金錦花, 여)는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가난한 농부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고 12살 때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7살 때 당시 큰 무당이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내림굿을 받고 굿 절차의 기본과 무당의 마음가짐, 처신하는 법 등 무당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적인 내용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관무당’과 방수덕 등 당시의 현역 무당들을 따라다니면서 굿 현장의 경험을 쌓았다. 본격적인 무속활동은 19세가 되던 해 부터 시작 했으며 강화에서는 2006년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때 평화를 기원하는 내림굿을 시행하기도 했다.

김금화의 굿당인 ‘금화당’은 하점면 신봉리에서 양사면사무소 넘어가는 언덕 초입에 있으며 김금화는 88세의 나이로  2018년 별세하였다.

2008 평화의 배띄우기 실제 굿 보러가기


 

제103호 완초장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일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년생 풀로서 용수초(龍鬚草)·현완(懸莞)·석룡추(石龍芻)라고도 한다. 제품으로는 화방석(4각·8각·원형의 방석)과 삼합, 송동이·소품 등이 있으며 모두 강화에서 부업으로 만들어 내는 특산품이다. 제작방법은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과 손으로 엮는 방법이 있다.

완초제품의 수요가 막대하였음에도 조선시대의 경공장(京工匠)이나 외공장(外工匠)에는 완초장은 두지 않았으며, 다만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 석장(席匠)이 있어 완초석(왕골돗자리)을 비롯한 많은 수요의 초석(草席)들을 조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 기능보유자는 강화의 이상재(李相宰)로, 그의 기능은 왕골을 손으로 엮어 만드는 화방석·꽃삼합·소품 등이다.

<자료 : 강화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