Ο 제1호 용궁사
인천광역시 중구 운남로 199-1
용궁사는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조선 철종 5년(1854)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세워지며 지금의 명칭인 용궁사로 바뀌게 되었다. 요사체 건물 앞면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용궁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Ο 제2호 전등사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길상면 온수리의 정족산성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나라 현존하는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절이다.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6점의 보물이 소장되어 있으며 경내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다. 고구려 시기부터 사찰이 세워져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고 중수되었다. 전등사란 이름은 고려 후기 충렬왕 때 붙여진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광해군 때 중수된 것이다.
Ο제3호 보문사
강화군 삼산면 삼산남로828번길 44 (매음리
석모도 낙가산 서쪽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다.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부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세우고 보문사라 하였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서 절을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낚아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이 석굴에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이루어져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절 뒤편에는 마애석불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앞에서 보이는 서해풍광 또한 일품이다. 보문사 경내에는 30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했을 당시 사용하였다는 큰 맷돌과 향나무, 1975년에 주조한 범종이 있다.
Ο 제4호 정수사
인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 85
신라 선덕여왕 8년(639) 회정선사가 창건하여 정수사(精修寺)라 했던것을 조선 세종 5년(1423) 함허대사가 중창하고 정수사(淨水寺)로 고쳤다. 특히 건물 후면 공포는 건축당시의 세부 건축 형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고, 1957년 보수공사 중에는 숙종 15년(1688) 수리 당시 세종 5년 에 중창되었음을 보여주는 상량문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마니산 동쪽에 자리잡은 정수사는 전등사, 보문사와 더불어 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찰중의 하나이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8년(639)에 회정선사가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한 후 이곳 지형을 보고 불자가 가히 삼매 정수할 곳이라하여 사찰을 세우고 정수사(精修寺)라 했는데 그 후 함허대사가 절을 중수한 후 법당 서쪽의 맑은 물을 발견하고 정수(淨水)로 바꾸었다.
Ο 제5호 백련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고려산로61번길 270 (부근리
고구려 장수왕 4년 병진(서기416)에 고려산을 답사하던 천축조사가 이 산 상봉 오련지(다섯개의 연못)에 오색연화가 찬란히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오색 연화를 채취하여 공중에 날려 그 연화들이 낙하한 곳마다 가람을 세웠는데 바로 이곳이 그중 백련이 낙하한 곳이다. 조선 고종 광무9년(서기1905) 을사년 봄에 인암화상이 화주 박보월로 본가람을 중건케하고 서기1967년 정미년 봄에 비구니 한성탄이 극 락전과 삼성각을 중수 하였다. 조선 순조6년 병인년(1806년) 3월에 서산대사 제6세손 천봉후인 의해당 처월대사의 사리비와 부도탑이 건립되었고, 서기1983년 비구니 한성탄이 도로 불사와 서기1986년에 범종을 조성 하였으며, 철불아미타불 좌상이 보물994호로 서기1989년에 지정되었고, 그해 12월 11일날 도난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이 본 가람에 한때 봉안되었다 한다.
Ο 제6호 청련사
강화군 강화읍 고비고개로188번길 112
고구려 장수와 4년(서기416년)병진해 천축조사께서 개산창건하고 청련사라 했다. 신라 실성왕 15년 동진안제 의회 12년 백제 전치왕 12년 불기 1443년 조선 순조왕 21년(서기 1820)신사해 화주비구니 포겸스님에 의하여 당 사찰을 중건하는 등 그뒤에도 여러차례의 중건중수를 거쳐 왔으나 건물이 워낙 낡고 퇴락하여 1979년 4월 주지 비구니 황법우 스님이 고려 건축양식으로 현존의 큰 법당을 신축하였다. 본 사찰 위쪽에 원통암이라고 하는 작은 암자가 있었으나 1984.5.29 청련사와 합병하였다
Ο 제7호 청수암
인천 강화군 강화읍 신문리 681-1
1936년 임봉법스님이 창건 1966년 제2대 주지인 정덕용스님이 도량확장 및 개축의 원력을 세웠으며, 1974년 극락전 및 미륵전,칠성각,요사채등을 복원 개축하였다. 1972년에는 대웅전이 중수되었으며, 1976년에는 대웅전·미륵전·칠성각·요사 등의 건물이 중건되었다. 또 최근 1994년에는 해운스님이 요사를 고쳐짓는 불사를 했다. 이 절은 경내의 숲이 울창하고 조망이 좋아서 휴식처로도 이름이 높다. 또 절 뒤편에 있는 언덕에는 철종이 임금이 되기 전 이곳 강화에서 살면서 애용하던 약수터가 있다고 한다. 남산 북록에 자리하고 있어서 흔히 ‘남산절’로 많이 불리고 있다. 대웅전과 금륜전·미륵전 등의 건물과 그 안에 아미타불상 및 관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후불탱화·독성탱화·신중탱화·현왕탱화·감로탱화 등이 있다. 그러나 절의 창건 역사와 마찬가지로 전부 근래에 조성된 작품이다. 강화읍 남산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일명 속칭 「남산절」 이라고도 한다.
Ο 제8호 적석사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181 (고천리
적석사는 고려산 서쪽에 위치해 있다. 고구려때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색의 연꽃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그 중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를 세웠는데 그곳이 이 절의 전신이다. 적석사 뒤편 산정상은 낙조봉이라 불리며 이곳에서의 낙조는 강도팔경의 하나로 꼽힐만큼 아름답다.
< 출처 : 인천광역시 사진 : 강화로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