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살아있는 교동도

-여행팁-

교동대교가 개통 이전까지는 강화본도 창후항에서 교동의 월선포구로 여객선을 이용 하였으나 대교 개통이후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졌다.

교동도는 동으로는 강화본섬, 서북으로는 황해도의 연백군, 남으로는 삼산면과 마주 보고 있다. 주위는 38.5km, 면적은 46.08km의 삼각주이다. 

교동은 원래 고구려의 고목근현 일명 대운도(戴雲島), 혹은 고림(高林)·달을신(達乙新)이었다가, 신라 757년에 교동이라고 고쳐서 해구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강화에 속했다가 1172년 6월 감무를 두었다. 1395년 만호 겸 지현사를 두었고 1413년 현감으로 고쳤다.  1629년 2월 교동현을 교동부로 고치고 경기수사를 두었는데, 1633년 월곶진으로 이치하였다.

관광포인트

   월선포 : 교동대교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다을새길 안내표지판앞에 베스트 포토스팟)

   대룡시장 :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등 오래된 가게 앞에서 사진 찍기, 전설의 마녀 촬영지(거북당) 구경하기, 쌀강정 등 전통 주전부리, 옛날 다방 등

   교동도 다을새길 걷기 : 16km, 6시간 소요
   (월선포-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정상-석천당-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 선착장)

   교동도 머르메 가는길 걷기 : 17.2km, 6시간 소요
    (대룡리-난정저수지-수정산-금정굴-애기봉-죽산포-머르메-양갑리마을회관-미곡처리장-대룡리)

   제비집 : 교동8경 감상, 가상현실 영상체험, 신문만들기, 카페와 전시관 등

여행코스

대중교통 : 강화버스터미널⇒교동제비집⇒대룡시장⇒연산군유배지⇒화개사⇒교동읍성⇒월선포

자가용 : 교동대교⇒고구리저수지⇒연산군유배지⇒교동제비집⇒대룡시장⇒교동향교⇒교동읍성

• 강화버스종합터미널에서 70번 버스이용 교동도까지 운행

제비집 : 032-934-1000


교동대교
교동대교는 섬 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농산물 운반 및 관광자원 활상화 등을 위하여 2008년 9월 25일 착공하여 2012년 개통 예정이였으나 2011년 갯벌에 설치되어있던 기초말뚝이 전도되면서 공사가 지연되어 2014년 6월 20일 임시개통, 같은해 7월 1일에 정식 개통하였다.
총 연장 3440m, 왕복 2차로 사장교로 총 904억의 공사비가 들었다.
교동대교는 교동주민을 제외한 외지인은 오전4시부터 자정까지만 이용이 가능하다.

교동대교 개통 전 교동도를 운항하던 여객선 ⇑


 

대룡시장

대룡시장은 6.25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군, 백천군(일명 연백) 등에서 교동도로 피란한 실향민들이 70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하면서 자연 발생된 전통 재래시장 이다.

고향이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가 코 앞인데 고항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교동 대룡시장은 교동대교의 개통과 함께 새로운 문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대의 문명이 손길이 닿는곳 마다 정겹던 그 옛날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것이 아쉽기만 하다.

시장 앞 교동도의 관광 플렛폼 교동 제비집 기가하우스, 대룡시장 내 교동사랑회에서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교동도의 상징 대룡시장의 제비집


 

교동읍성

교동읍성은 교동면 읍내리 577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향토유적 제30호이다. 북쪽으로는 화개산이, 남서쪽으로는 남산봉수가 보인다. 교동읍성은 그 둘레가 779m이다.

1753년 통어사 백동원이 치첩(雉堞)을 수축하였고, 1764년에 방어사 백낙윤이 남문(庾亮樓)을 중건하였으나 동문(統三樓)과 북문(拱北樓)은 수축하지 못 하였으며, 남문 앞의 해자도 역시 메워 버렸다.

규모는 둘레가 4정 26칸 4척이고 높이는 18척이다. 동, 서, 북문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으며, 남문만이 현존하고 2018년 보수를 마쳤다.  내부에는 조선시대 수영터와 황룡우물 등이 있다.


 

사신당과 사신관지

고려때 중국의 사신이 뱃길로 도착하는 것을 맞이하던 사신관이 있었다.  바닷가 자연석에 정으로 쪼아 만든 층대가 있는데 배를 타기위해 만든 것이며 이곳 남산위에 우리나라와 중국사이에 사신이 왕래할 때 뱃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사신당과 배를 묶어 두었던 계류석도 있다.

 

계류석과 암반을 깎아만든 사신관로 ⇑


 

교동향교

교동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최초로 창건된 유서깊은 곳이다. 최초 창건은 1127년으로 이때는 화개산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후 1286년에 고려 유학제거(儒學提擧)로 있던 문성공 안유가 원나라에서 공자상을 들여와 봉안하였다.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먼저 공자와 제자들의 화상을 봉안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경도와 각읍에 문묘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교동향교는 1741년에 지부 조호신이 화개산 북쪽 기슭에 있던 것을 남쪽기슭으로 옮겼는데, 그 일대를 지금도 향교골이라고 한다. 향교는 현재 대성전과 동서무·명륜당·제기고·내외삼문이 있다.

향교 입구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홍살문 앞에는 “수령변장하마비(守令邊將下馬碑)”라는 명문의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와 노룡암 ⇑


 

화개사

교동도의 대표사찰 화개사는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 목은 이색선생이 교동의 ‘화개산’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하는 기록에 따라 고려시대 창건된것으로 보고있을 뿐이다.

<목은집>에 14세 때인 1341년에 친구 2명과 함께 책을 싸들고 바다 건너 교동 화개산에 들어가서 공부하였다고 기록과 그가 지은 한시에 ‘화개산 승방’이 기록되었고 1932년 간행된 <속수증보 강도지>에는 목은 이색 선생이 공부한 곳이 ‘화개암’이라는 기록이 뒷받침 하고 있다.

그동안 ‘화개암(華蓋庵)’, 으로 불려왔으나 최근 ‘화개사(華蓋寺)’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동도에는 고려시대 화엄사(재운암)와 안양사, 화개암이 있었으나 지금은 화개사만 남아있다.

< 강화로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