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는 대체로 흑운모 편마암과 화강편마암의 탁자식 고인돌이 많다.
2000년 12월 고창, 화순 고인돌 유적과 함께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사적 제137호의 강화 부근리 지석묘를 비롯하여 70기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강화 고인돌은 하나의 군집으로 이루어진 고인돌 군이 대부분이며 기타 고인돌은 1기 또는 2기로 형성되어 있고, 강화 고인돌은 이후 다시 한반도의 서남부에 전파된 후 독자적으로 현저하게 발달하는 고인돌의 변천 과정에 있어 출발점으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강화고인돌 세계유산 보호 협약서>
가. 분포와 입지
강화지역의 고인돌 유적은 섬의 북부지역에 치우쳐 있고 특히 고려산, 별립산 등 산자락이 하나의 구분을 짓는 자연 지세이기도 하다.
강화도는 간척으로 의한 지형변화로 볼 때 고인돌과 선사인들의 어로활동에 필수적이었던 바닷물은 주요한 역할로 당시 생활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고인돌이 평지보다 해발 100~300m 되는 고지의 밀집도가 높은 것으로 보아 고인돌을 축조할 당시이미 자리를 골랐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인돌의 기능과 장례문화 등 축조에 대한 여러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강화지역 고인돌 유적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평안·황해지역과 마찬가지로 서해안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한반도 고인돌의 분포와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고인돌 문화가 서해를 통하여 교류,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 강화 고인돌의 분포적 특징
강화의 고인돌은 교산리·삼거리·고천리 고인돌 군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고인돌이 해안과 인접된 지역에 축조되었는데, 넓은 바다와 직접 맞닿은곳이 아니라 간척지가 형성된 만을 따라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고인돌의 분포는 일차적으로 마을형성과정에서 해일이나 바람에의한 거친 조수의 위험을 피하고, 어패류 등의 식량자원획득이 쉬운 지역을 주민들이 선택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청동기시대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이루어진 정착 생활은 대규모의 노동력 동원이 가능하였고, 나아가 집단 어로활동으로 수자원획득이 더욱 쉬워졌다.
그러나 어로 활동은 기후변화에 민감하여 돌발적인 해상사고에 어민의 불안감은 더해졌고 이를 해소하고 풍어를 기원하기 위한 대상이 필요하였다.
고인돌은 이러한 역할을 하는 고인돌을 해안선과 인접하여 축조함으로써 축조과정에서 수반되는 집단적인 의례 행위의 반복을 통해 안정적인 식량 자원의 획득을 기원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