Ο 봉수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한 서해안에서 큰 배가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강화는 삼국시대부터 해상교통의 관문으로 강화도를 차지하기 위하여 공략의 거점이 되고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외침을 겪었던 흔적의 관방유적들이 무려 97개나 존재한다. 관방유적이라 함은 성곽ㆍ진ㆍ보ㆍ돈대ㆍ포대ㆍ봉수ㆍ요망대 등을 통 털어 일컷는 중요한 유산인데 막상 강화군민들의 관심은 저 멀리에 있다.
우리나라 4번째의 강화도는 400m안팎의 비슷비슷한 산들이 남북으로 다정하게 앉아있다. 이중 혈구산을 제외하면 모든 정상에 어김없이 관방유적이 북으로부터 별립산, 봉천산의 정상에는 산성과 봉수대, 고려산 역시 산성 및 오련지가 덕산과 진강산, 대모산 정상에도 봉수를 설치하여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였고 교동도 섬에도 화개산과 수정산 정상에 봉수대를 설치했다.
봉수대는 조선 후기까지 700여기 설치, 현재 400여기만 겨우 남아있어
고대 중요한 군사 통신시설로 사용되었던 봉수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에서 2방향으로 남에서 3방향 등 총5개 방향의 길을 따라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의 신호체계로 적의 침입이나 교전 등 위급 사항을 중앙이나 주변에 즉시 알려 방어하는 통신수단이었다. 봉수는 동, 서양 모든 나라에서 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후기까지 676개소가 설치 운영되었으나 세월이 흐른 현재는 약400여기만이 겨우 남아있다고 한다.
현재 강화의 봉수대 흔적으로 하음산봉수는 정상에 사다리꼴의 석축이 잘 남아있고 화개산봉수는 정상 서쪽봉우리에 방형의 석축으로 일부 남아있다, 덕산봉수는 석축연조가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있어 강화도의 봉수 중 그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그 외의 봉수들은 위치 정도만 확인할 수 있는 정도 또는 형태만 남아있는 정도이다.
봉수는 성격에 따라 전국의 봉수가 집결되는 경봉수(京烽燧), 국경이나 해안가 및 도서 등에 설치한 연변봉수(沿邊烽燧), 육지의 내륙에 설치된 내지봉수(內地烽燧), 영이나 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권설봉수(權設烽燧)로 구분한다. 이중 강화의 봉수는 최전방 해안의 연변봉수로 전남 순천에서 출발 충청→경기로 전달되는 5개 줄기 중 제5거와 김포에서 합류되어 경봉수인 목면산봉수(현 서울 남산)의 제5봉에 전달된다.
강화의 봉수는 강화 6대산과 강화읍 남산의 봉수가 약 9Km의 거리로 전국 평균인 8Km보다 약간 긴 편이다. 각 봉수별로 봉수군은 16~20인이 있었으며 이외 교동도의 화개산, 수정산과 진망봉수를 포함하여 8개의 봉수가 설치되었고 우리나라의 남해안과 서해안의 섬 지역 연안지역에만 설치된 요망대 4개가 있어 봉수대와 요망대가 함께 있다는 것이 타지역과 비교가 된다.
말도·볼음도·어류정에 요망대를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순식간에 본영 보고, 대포를 이용한 서해 섬들의 획기적인 통신체계
또한 강화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으면서 중앙으로 연결되는 봉수의 노선과는 다르게, 대포 소리를 이용한 4기의 요망대를 강화의 주요 도서 해안을 따라 설치하게 된다. 종류는 자체 집중적 방어체계인 권설봉수(權設烽燧)이다. 바다를 통하여 외적이 침범하면 말도 등 여러 섬에서 보고를 하고, 본부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대응하는 것이다.
각 섬 간의 거리(말도에서 볼음도까지 5리, 볼음도에서 서검도까지 10리, 서검도에서 미법도까지 10리, 미법도에서 석모도까지 10리, 석모도에서 삼암돈까지 3리)가 가까워 포성이 서로 잘 들리고 신호 역시 빠르다. 각 섬에 요망장 1명과 요망군 10명, 대포 2문을 지급하여 외적이 침입하면 포성을 울린다. 말도에서부터 섬, 섬으로 차례로 응하여 순식간에 영문에 이른다. 적이 40리 밖에 있더라도 영문에서 미리 알고 조치할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통신이었다.
강화도 끝단의 말도요망대는 서쪽으로는 서해, 북쪽으로는 황해도 연백군, 동쪽으로는 볼음도·주문도·아차도 등 서해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지로 봉수와는 달리 강화 본영이나 교동 통어영에 해안의 위급상황을 포성으로써 보고하는 기능을 가졌다. 볼음도 봉화산 정상에 있는 볼음도요망대는 가공하지 않은 크고 작은 자연석으로 축조하여 해안의 위급상황을 교동 통어영에 보고하였으며, 삼산면 매음리 산 정상에 위치한 어류정요망대는 동쪽으로는 강화 본도가, 서쪽으로는 서도 여러 섬이 잘 조망된다. 해안의 위급상황을 교동 통어영과 강화 본도의 삼암돈대를 통하여 본영에 보고하였으며 현재 남아있는 요망대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주문도에 요망대를 관할하는 주문진을 설치, 해적을 방어
진이란 중요한 강이나 바다에 군사시설을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사전에 관찰하고 방어하는 군사기지로 강화도 곳곳에 진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서도면 주문도리의 주문진이다. 주문진은 서해에서 해적의 출몰, 외적의 침략 등과 같은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하여 1712년 강화유수 민진원이 장봉진과 함께 설치했다. 현재의 옛 서도초등학교 자리로 정문 오른편에 행정제사 현득유의 영세불방 비가 세워진 연도와 함께 서있다.
<글/사진 : 강화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