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민들의 가장 큰 숙원은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로 1970년 1월 2일 강화대교가 개통되어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강화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으로 둘레가 배를 마음대로 접안할 수 없는 특수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서해안 특유의 빠른 물살과 험류로 인하여 고려시대 몽골군이 빤히 건너다 보이는 강화도를 함부로 건너오지 못했던 것은 그 만큼 육지를 왕래하는 교통이 열악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강화 사람들의 육지 나들이는 대형 선박보다는 주로 나룻배를 이용해야 했고 이에 따라 갑곶진·승천포를 비롯한 26개소의 나룻터가 발달되었다.
한국전쟁 후 미 해병대가 사용했던 상륙용 주정(舟艇)을 도선으로 개조하여 김포에서 오는 육지 승객을 버스에 태운 채 1일 7회로 시잓하여 30회까지 증회, 성동과 갑곶사이를 건너게 했다. 그러나 문제는 급속도로 발달하는 육지의 차량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야 하는 것은 물론 늘어나는 관광객을 유치해야 하는 숙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민들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강화대교건설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성금을 내는 등 교량을 가설하기 위한 운동을 백방으로 벌였었다. 그 열망이 1965년 7월 착공되어 총공사비 5억 8700만원을 들여 4년 7개월만인 1969년 12월 30일 완공되고 3일 후인 1970년 1월 2일 개통되었다
강화대교를 안고 있는 갑곶은 강화도의 관문으로 조선시대에는 강화도의 승군을 통제하던 진해사의 진해루를 통하여 입성 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그리고 천주교가 입성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외국 사신들이 강화도를 내왕할 때 배를 기다리는 동안 사신들을 접대하였다는 이섭정은 지금 이라도 옛 선비들의 싯귀가 읊어 나올 듯 만 하며 이섭정과 강화대교 그리고 갑곶돈이 함께 어우러져 강화팔경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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