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고가도(古加島)란 섬이었으며 강화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조선시대 이래로 하도면(下道面)이라 칭하다가 1937년 하도공립보통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있던 일본인 산원(山元)의 제청으로 하도(下道)라는 명칭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화도(華道)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내리(內里)
옛부터 마을은 안락한 생활을 영위토록 취락이 형성되었는데 마을모양이 한자의 내(內)자와 비슷하고 산모양이 또한 흡사하여 내리라 칭하였으며 넓은 골안에 있는 마을이라 안골로도 부른다.
간촌(間村) : 내리의 큰말과 동촌사이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샛말이라고도 한다.
동산촌(東山村) : 샛말 남쪽지대 높은곳에 있으며 산과 접한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라 동산촌이라 부르며 동산말이라고도 한다.
막은골(杜谷) : 내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동구에는 두 골짜기가 있어 외부에서 보면 동리가 사면으로 막혀 있는 듯하여
막은골 또는 두곡이라 부른다.
소루지 : 내리 북쪽 해변에 있는 마을로 솔곶이가 솔오지, 소루지로 된 듯하며 솔곶은 좁은 언덕이란 뜻으로 일명 송강포(松岡浦)라고도 한다.
큰말 : 내리의 중심이 되는 큰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며 대촌으로도 부른다.
후포(後浦) : 내리 안말에서 보면 뒷개안이라 후포라고 부르며 이곳의 지형이 노루목같다고 하여 노루메기라고도 한다.
상방리(上坊里)
화도면에서도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상방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상방리라 칭하였다.
개미허리 : 상방리 남쪽 마니산 중록에 있으며 산모양이 개미허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창촌(串唱村) : 숙종때 가능포 뚝을 축조 이전까지는 작은섬으로 출어기에 풍어제를 올렸는데 그 배굿의 명칭을 곶창굿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덕골말 : 상방리와 내리 경계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조하몽과 안오위장이라는 두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가세가 빈곤하여 이 두 부자집에서 도와 주어 생계를 유지하여 덕을 입었다는 뜻으로 덕골이라 부른다.
도깨비동산 : 상방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비가 올 때 도깨비가 나타났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촌(東村) : 상방리 동쪽 마니산 등산로 입구 일대의 마을로 상방리 동편에 있어 동녘말이라 칭하다가 근래에 와서 동촌으로 부른다.
서구촌(西溝村) : 상방리 화도초등학교가 소재한 마을로 마을 중앙에 있는 개울을 중심으로 개울 주변과 개울 서편 마을을 합쳐 서구촌으로 부른다.
석수말 : 동촌 옆에 있던 마을로 석수장이가 살았다하여 석수말이라 하였다.
용무골 : 서구촌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용이 하늘로 올라가다가 임산부가 쳐다보아서 떨어졌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하며 일명 용못골이라고도 부른다.
은구덩이 : 상방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은과 여러 보물이 났다고하여 은구덩이라 부른다고 한다.
문산리(文山里)
예전부터 박뫼산의 이름을 따라 박산동(博山洞)이라 칭하다가 문뫼산의 이름을 따서 문산동이라 개칭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문산리라 하였다.
문곡(文谷) : 문산리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약수곡이 있어 문산리에서 문자와 약수곡의 곡(谷)자를 따서 문곡이라 부른다.
문현(文峴) : 마을 중앙에 달보기 산이 있어 문산리의 문자와 월현산(月峴山)의 현자를 따서 문현이라 칭하고 있다.
약밭골 : 충청바위 위에 있는 골짜기로 약수터가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약수곡으로도 부른다.
우물고개 : 문산리에서 덕포리를 왕래하는 고개에 샘이 있어 우물고개라 부른다.
재궁(齋宮) : 참성단에서 하늘에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릴 때 제관들이 재숙하던 곳이라 하여 재궁이라 부르며 제기와 제물도 준비하던 곳이다.
덕포리(德浦里)
1706년(숙종 32) 선두포 뚝을 막기전에는 배가드나 들던 포구마을로 왕래자가 많아 손님들을 상대로 맛이 좋고 값도 싼 떡을 팔아 떡장사들이 부자가 되었다고하며 떡장사가 많은 포구라 떡포리라 칭하다가 덕포리로 부른다고 한다.
눈소나무재 : 윗말에서 양달말을 왕래하는 고개로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덕달(德達) : 양도면과 덕포리 사이를 배가 다닐 때 처음 닿는 포구로 떡장사가 많아 떡달포라 부르다가 덕달촌으로 칭한다고 하며 덕포리 북쪽 끝 마을이다.
돌다리 : 덕포앞 하천에 있던 돌로 된 다리라 하여 붙인 이름으로 지금은 새로 놓고 덕포교라 부른다.
머겸 : 윗말 동편골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머귀나무가 있어 머겸이라 하였으며 그 안쪽에 있는 마을를 안머겸이라 한다.
신촌 : 마을 뒷산에서 흐르는 세줄기 시냇가에 형성된 새로운 마을로 삼촌이라 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새말이라 하여 신촌으로 부른다.
양지촌(陽地村) : 화도면 여러 마을 중에서 햇볕이 가장 먼저 비치는 마을이라 하여 양달말로 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양지촌으로 개칭하였다.
윗말(上村) : 머겸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주 유씨 문중에서 낙향한 할아버지가 처음와서 살던 곳(윗대어른이 살던 곳)이라하여 윗말 또는 상촌이라한다.
장풍고개 : 시내말에서 덕달을 왕래하는 고개로 평평하고 길어서 장풍고개라 부른다.
족실방죽(足失防築) : 조선후기 의병대장 이능권(李能權)이 일본군대와 선두포 방죽을 끼고 일대 격전을 벌려 일병 30여 명의 발목을 잘라 방죽에 던져 족실방죽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경지정리로 들로 변하였다.
초피산(椒皮山) : 덕포리 뒤편에 있는 산으로 산 모양이 붓 끝과 같이 뾰죽하다고 하여 초피산이라 부르며 문필봉이라고도 한다.
하나골 : 옛부터 이 고을에 한문서당이 있어 한문을 배우고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한학골이라 부르다가 하나골로 칭한다고 한다.
할미바위 : 남편이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아 그의 아내가 바위에 올라가 늘 바다쪽을 바라보며 애타게 기다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사기리(沙器里)
옛부터 이 마을에 도요지가 있어 분청사기의 산지라 하여 사기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사기리라 칭하였다.
작은사골(小沙谷) : 사기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호수가 작은 곳이라 하여 작은사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큰사골 : 호수가 크다하여 큰사골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 분청사기의 산지라고 전한다.
함허동천(涵虛洞天) : 정수사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반석이 200m 펼쳐 있고 폭포가 있어 경치가 아름다워 세종때 함허대사가 정수사에서 수도하면서 이곳 바위에 함허동천이란 네글자를 새겼다는데서 유래되었다.
동막리(東幕里)
흥왕리에서 동남방을 바라보면 산이 절벽을 이루고 있어 장막을 친것과 흡사하다고 하여 동막리라 칭한다.
대동 : 동막리의 중심 마을로 큰말이라 대동으로 부른다.
덕고개 : 장전에서 대동을 왕래하는 고개로 병자호란때 전염병으로 사람이 많이 죽어 임시로 시신을 모셨다가 장례를 치른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멍석바위 : 장전뒤에 있는 바위로 넓어서 벼를 널어 말릴 수 있던 바위라 하여 멍석바위라 부른다.
못골 : 긴밭말 북쪽에 있는 마을로 못이 있어서 못골이라 불렀다.
분오리고개 : 대동마을 중심에서 분오리 고개쪽을 보면 가깝게 보이면서도 실제 걸어보면 오리길이나 되어서 분오리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장전(長田) : 큰말 서편에 긴밭이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정수고개 : 긴밭말에서 사기리 정수사를 넘어다니는 고개라 하여 정수고개라 부른다.
정수사(淨水寺) : 신라 639년(성덕여왕 8)에 회정선사가 창건하고 정수사(精修寺)라 하였는데 그후 함허대사가 중수한 후 법당 서편에서 맑은 샘을 발견하고 지금의 정수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흥왕리(興旺里)
고려 1259년(고종 46)에 창건한 흥왕이궁이 있어 흥왕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흥왕리가 되었다.
골말 : 큰말 서북쪽 마니산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골말이라 부르며 곡촌이라고도 한다.
대궐터 : 큰말 뒤에 있는 1259년에 창건한 흥왕이궁이 있던 자리라 하여 대궐터라 부른다.
대흥 : 고려 고종때 흥왕이궁이 있던 자리 인근에 형성된 마을로 흥왕리에서 제일 크다하여 큰말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대흥으로 호칭하고 있다.
마니산성 : 고려때 쌓은 석성으로 마니산 서남일대에 성터가 남아 있어 불러진 이름으로 1666년(현종 7)에 강화유수 서필원이 성을 헐것을 건의하여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매너미고개(鷹踰峴) : 마니산 서편 줄기로 흥왕리 대흥에서 내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높고 험하여 매나 넘을 수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홍익한 택지(洪翼漢宅址) : 인조때에 척화파로 윤집, 오달제와 더불어 삼학사의 한 사람인 홍익한이 살던 집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차리(如此里)
미루지의 고뿌리산과 여차뿌리산이 함께 뻗어 있다하여 여차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여차리가 되었다.
구석말 : 여차리 서쪽 구석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구석말이라 부른다.
미루지(美樓地) : 여차리 동편 마을을 말하며 해변에 아름다운 누각이 있어 미루지라 칭하였으며 일설에는 이곳에서 해변을 바라보면 마치 다락방에 앉아 있는 것 같아 미루지라 부른다고도 한다.
새꾸지 : 여차리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새꾸지라고 부른다.
지부새 : 새꾸지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천냥구댕이 : 미루지 옆에 있는 개울로 옛날에 천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장화리(長花里)
마을이 해변으로 길게 형성되었고 서쪽으로 산이 길게 뻗어 곶을 이루고 있어 장곶동(長串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길다는 뜻의 장(長)자와 곶(串)을 화(花)로 바꾸어 장화리로 개칭한 듯 하다.
김촌(金村) : 장곶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부터 김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으로 살고있어 김촌이라 하였으며 옛 장곶보의 진이 있던 마을로 진말로도 부른다.
버드러지 : 큰말 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줄기가 버드러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러온 이름으로 마을 중앙에 큰 버드나무가 있다고 하여 유촌(柳村)으로도 부른다.
주촌(朱村) : 신안 주씨가 10여 대를 집단으로 세거해 온 마을에서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