Ο 금덩어리의 횡재로, 온수리 99칸집 우일각
근대까지 강화에는 99칸 대규모 주택이 3채 있었다. 그러나 모두 화재로 소실 되었고 유일하게 길상면 온수리 우일각만이 남아있다.
우일각은 일정시대인 1925년 온수리의 거부 김영백이라는 사람이 조선시대 한옥의 전통양식으로 건축한 민가이다. 당시 김영백은 강화도 남부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였다고 할 정도의 거부다.
옛날 김영백은 몹시 가난하여 집도 없이 대대로 이곳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헛간을 짓고자 뒷 둔턱을 파 내려다가 괭이 끝에 쇠붙이가 닿는 소리를 들렸다. 쇠붙이는 자그마한 녹슨 솥이었다. 이를 파내 뚜껑을 열어보니 주먹만한 금덩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 횡재 소문들 들은 당시 강화유수가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방을 붙여 금괴를 묻은 장본인을 수소문 했으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김영백에게 불로소득의 10분의1인 십일세만 물리고 그 금덩어리를 차지하게 하여 김영백은 강화 최고의 갑부가 됐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우일각은 그동안 화재도 겪고 많이 훼손된 상태에서 매물로 나온것을 한 기업에서 구입 후 30억 여원을 들여 우리 전통가옥의 원형으로 보존하게 된 것이고 매년 2억원 정도의 유지보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Ο 전통한옥 학사재
학사재는 불은면 덕성리 덕진진 입구에서 갈림길 우측에 있다. 당연히 더 들어가면 남장포대와 덕진돈대와는 바로 지척에 붙어있다.
학사재는 안동 하회마을의 심원정사 등 한옥 목조건축의 대가 신영훈씨가 설계하고 궁궐 건축 등 목조건축의 실무경력이 뛰어난 조희환 도편수가 맡아 건축하였으나 공사 중 타계하여 이광복 도편수가 그 뒤를 이어 1989년에 완공 하였다.
이 건물의 건축주는 김영훈씨로 현재 미국 로스앤젤리스에서 ‘마름복판’이라는 의류제조 사업을 하고 있다. 건물구성은 안채 50평, 사랑채 30평, 대문채 10평 등이며 주변은 15,000여평에 이른다.
학사재는 개인 사유지 주택으로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한다.
<강화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