Ο 고인돌의 기원과 소멸
가. 고인돌의 탄생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청동기 시대 전 기간에 걸쳐서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철기가 도입될 무렵에 소멸되었다. 우리나라 고인돌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크게 북방설·자생설·남방설로 나눌 수 있다.
1) 북방 기원설
고인돌도 다른 청동기 문화와 더불어 북쪽으로부터 한반도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중국 요령·시베리아 돌널무덤 계통의 거석문화 영향을 받아 고인돌이 발생하였다는 기원설로 고인돌의 분포와 형식, 동검의 분포권이 상당 부분 일치하고, 고인돌의 하부구조가 북방의 묘제인 석관묘와 같다는 점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2) 남방 기원설
세계 고인돌의 분포는 유라시아에서부터 인도 남부, 수마트라섬, 자바섬, 한반도까지 커다란 선을 그리며 이어져 있음을 근거로 한다. 동남아시아로부터 세골장과 함께 벼농사 문화와 함께 바닷길을 통해 전파되었다는 기원설로 중국의 동해안 지역에서 고인돌 유적이 발견되어 요동 반도를 거쳐 한반도 전역과 일본 남단으로 전파되었다는 주장이다.
3) 한반도 자생설
한반도 자체에서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고인돌이 주변 지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의 수가 매우 많고 형식 또한 다양할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앞선다는 사실로 자연발생설의 근거로 들고 있다.
나. 돌을 다루는 선사 인의 지혜와 기술
오늘날처럼 건설장비가 없었던 선사시대 사람들도 나름의 지혜로 돌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하고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고인돌을 만들었다.
우선 큰 돌을 잘라내기 위하여 채석장에서 바위에 결을 따라 홈을 파고,
홈에 나무쐐기를 박고 나무에 물을 부어 두면 나무가 불어나면서 바위가 쪼개진다는 ‘팽창의 원리’의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이렇게 잘라 낸 돌은 잘 다듬어서 통나무를 바닥에 깔고 부족의 힘을 모아 옮겼으며 통나무를 이용하면 무거운 짐도 운반할 수 있다는‘마찰력의 원리’를 이용한 기술이 발휘된 것이다.
덮개돌이 운반되면 바닥에 구덩이를 파서 받침돌(굄돌)을 세운 후 받침돌의 높이만큼 주변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들고 덮개돌을 끌어올려 받침돌 위에 덮었다. 이는 ‘빗면의 원리’로 빗면을 이용하면 수직일때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 물체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원리이다.
그 뒤 쌓았던 흙을 치우면 고인돌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든 무덤방에 시신과 부장품 등을 묻어 장례를 치렀다.
다. 고인돌의 소멸
청동기 후기까지 1천 년 동안 만들어진 고인돌은 이후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청동기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선진 철기문화가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때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청동기시대 소규모 부족을 다스렸던 족장이 아닌 대규모 집단의 수장이 등장함으로써 계급사회는 더욱 세분되었고 무엇보다 철기가 농기구로 이용되면서 생산량이 늘어나고 농경지가 확장되어 노동력의 능률도 극대화되었다. 고인돌 축조에 따른 인력 동원은 노동력의 손실을 주기 때문에 점차 외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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